●---부처님공부

[선사어록] 임제록 / 34. 거부할 수 없는 것

天 山 2015. 11. 30. 23:43

모습 없음이 참 모습이다


어떤 부류의 승려는,
“부처는 구경의 경지이니 무수한 세월 동안 수행한
공덕이 가득해야 비로소 도를 이룬다.”고 말한다.

도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만약 부처가 구경의 경지라고 한다면, 무슨
까닭으로 부처는 80살에 쿠시나가라 성의 사라쌍수
사이에서 옆으로 누워 죽었는가?

부처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부처의 생사는 나의 생사와
다르지 않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대들은 또한, “32상 80종호가 부처이다.”라고 말하지만,
그렇다면 전륜성왕도 부처여야 할 것이다.

32상 80종호는 다만 환상일 뿐임을 분명히 알라.
옛 사람은 말하기를, “여래가 나타내는 몸의 모습은 세간의
인정에 따르기 위함이니, 사람들이 단견(斷見)을 낼까 염려
하여 방편으로 헛된 이름을 세우고, 32상이니 80종호니 하는
말을 빌리지만 모두가 헛소리일 뿐이다.

몸이 있으면 깨달음의 본체가 아니고, 모습 없음이 곧 참
모습이다.”라 하였다.

부처, 조사, 중생, 구경의 경지, 마음공부, 수행, 공덕,
업장소멸, 도, 마음, 의식, 아상, 에고(ego), 진아(眞我),
본성, 견성, 생, 사, 32상, 80종호, 실상, 환상, 세간,
출세간, 여래, 단견, 상견(常見), 방편, 실법, 깨달음,
무명 등등등 수많은 말들이 마음공부하는 사람을 감싸고 있다.

이 말들은 제각각의 모습을 지니고서 서로 연결되고 연관
되면서 거대한 미로(迷路)와 같은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른바 마음공부하는 사람, 도 닦는 사람, 수행하는 사람,
참선하는 사람, 명상하는 사람이라고 일컫는 부류들의 다수가
이런 말들의 미로 속을 헤매고 다니며 어떤 때에는 절망하고
어떤 때에는 만족하며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있다.

말과 생각이라는 허망한 환상을 실재(實在)라고 여겨서
환상 속에서 온갖 경지(境地)와 단계를 차별하고 온갖 행위를
통하여 그러한 환상에 더욱더 견고하게 집착한다.

그리하여 오랜 세월 노력한 뒤에 어떤 그럴듯한 환상에 꽉
집착하고 머물러서는 만족해 하며 자신이 한 경지를 이루
었다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참으로 가엷고 안타까운 일이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이름과 모양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다.’고 하며,
‘법(法)은 본래 법도 아니고 법 아닌 것도 아닌데 이름으로만
법이니 법이 아니니 할 뿐이다.’고 하며, ‘설명할 법이 없다.’
고 하며, ‘깨달아 얻을 법이 없다.’고 하며, ‘머무름이
없어야 한다.’고 하며, <반야심경>에서는 ‘생겨남도 없어짐도
없으며 더러움도 깨끗함도 없으며 많아지거나 적어짐도 없다.’
고 하며, ‘얻을 것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분명한 말이
있는데도 우리는 이 말을 올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오히려 이런
말들에 속아서 이런 저런 망상(妄想)을 내고 있다.


이름과 모양이 아니고, 법이 아니고, 설명할 것이 없고, 얻을
것이 없고, 생겨나거나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할 때,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한다면 바로 어긋난다.

그것들은 모두 이름과 모양으로 생겨나거나 없어지며 설명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냥 막연히 있을 수 밖에 없는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단 말인가?
법은 이러한 온갖 생각과 말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온갖 생각이나 말들과 법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다만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위를 하든 한
순간도 법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바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이 글의 뜻에 구속되어
있지 않다면, 당신이 언제 법에서 벗어난 적이 있는가?


- 임제의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