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공부

[선사어록] 임제록 / 32. 일 없는 것이 좋다.

天 山 2015. 11. 28. 23:04

일 없는 것이 좋다


도 공부하는 이들이여! 착각하지 말라.
세간이나 출세간의 모든 법(法)은 전부 자성(自性)도 없고,
생겨나는 성품도 없고, 다만 헛된 이름[空名]일 뿐이다.

이름 또한 헛된 것인데, 그대들은 오로지 저 부질 없는 이름을
진실하다고 여기니, 크게 잘못하는 것이다.

설사 무언가 있다고 하여도 모두가 의지하여 변하는 경계이니,
보리니 열반이니 해탈이니 삼신불(三身佛)이니 지혜니 보살이니
부처니 하는 것들은 모두가 의지하여 변하는 경계이다.

그대들은 의지하여 변하는 경계 속에서 무엇을 찾느냐?
나아가 3승(乘)과 12분교(分敎)는 모두가 닦아도 깨끗해지지
않는 낡은 종이요, 부처는 허깨비이며, 조사는 늙은 비구이다.

그대들도 또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느냐?
그대들이 만약 부처를 구한다면 곧 부처라는 마구니에게 붙잡히고,
조사를 구한다면 조사라는 마구니에게 결박된다.

구한다면 모두가 고통이니, 일 없는 것이 좋은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바다와 같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온갖 이름과 모양은 마음의 바다 위에
일어나는 물결이다.

우리가 평소 생활 속에서 하는 일이란 늘 물결들을 분별하고
헤아려서 좋아하고 싫어하고 취하고 버리고 하는 짓이다.

그런데 물결이란 것은 인연따라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으로서,
겉으로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재로는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물이 있어서 여러 인연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실재하는 것은 오직 물일 뿐이고 물결은 헛된 것이다.
물은 정해진 모양이 없기 때문에 겉으로는 이름과 모양으로
분별되지 않지만, 진실로 실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결은 겉으로는 이름과 모양으로 분별되지만, 그저
이름과 모양뿐이요 실재하는 것은 물이지 물결이 아니다.

다시말해 실재하는 것은 물이지만 물은 이름과 모양으로 뚜렷이
드러나지는 아니하므로 의식적으로 파악할 수가 없으며, 물결은
이름과 모양으로 뚜렷이 드러나 의식적으로 파악되지만 실재가
아니라 헛된 것이다.

마음공부란 우리 자신 즉 우리 마음의 실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저 생기고 멸할 뿐인 이름과 모양의 헛된 물결 위에서 헛되이
분별하고 번뇌하는 것이 자신이라고 여기는 어리석음을 부수어
버리고, 본래 자신은 생기고 멸함이 없는 진실한 물임을 경험
하는 것이다.

이제 바로 지금 마음의 물을 경험해보자.
지금 우리가 알고 있고 보고 있는 것은 물결일 뿐이므로 물결을
통하여 물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마음의 물이 전혀 인연에 응하지 않아 거울처럼 잠잠히 있다면,
의식이 활동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서 경험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물을 경험하려면 인연따라 일어나는 의식의 물결을
보되 인연따라 달라지는 모양으로는 보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인연의 모양으로 물결을 치든 그 모양에는 상관치 말고,
그저 쉼 없이 움직이는 물결이 곧 물임을 경험하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글을 읽고 있는 의식의 물결 위에 다양한 모양의
글자가 나타나 지나간다.

이제 종이 위에 새 글자가 나타나면 즉각 즉각 반응하여 나타나는
의식의 물결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살펴보라, 바로 지금.

아무리 살펴보아도 나오는 곳이 없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여전히 물결은 나오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여기에서. 찾으면 물결뿐이지만, 찾지 않으면
늘 물을 경험하고 있다.

물결이 바로 물이므로. 찾으면 의식으로 떨어지지만 찾지 않고
쉬면 한 순간도 모양 없이 출렁이는 마음의 물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일 없이 쉬는 것이 좋은 것이다.


- 임제 의현(臨濟 義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