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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어록] 임제록 / 36. 변함 없이 지금 이 자리에

天 山 2015. 12. 3. 23:45

변함 없이 지금 이 자리에


오직 여러분 눈 앞에서 지금 법을 듣는 사람이 있을 뿐이니,
이 사람은 불 속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 속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으며, 삼도지옥에 들어가도 마치 동산에서 거닐며
구경하듯이 하며, 아귀와 축생에 들어가도 과보를 받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거리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만약 성인을 좋아하고 범부를 싫어한다면,
생사의 바다에서 떳다 가라앉았다 할 것이다.

번뇌는 마음에서 말미암아 있는 것이니, 마음이 없으면
번뇌가 어떻게 구속하겠는가?

분별하여 모습을 취하는 수고만 하지 않는다면, 잠깐 사이에
저절로 도를 얻을 것이다.

그대들이 남에게서 부지런히 배워서 얻으려 한다면, 3아승지겁이
지나더라도 마침내 생사로 돌아갈 것이니, 일 없이 절에서
가부좌하고 앉아 있는 것이 더 좋다.

공부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거리낄 일이 많다.
아니 대하는 것들 전부가 거리낄 일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하는 일에서 대하는 상대가 모두
나를 압박해 온다.

나와 상대를 구분하여 나의 입장에서 상대를 대하니 자연 그렇게
거리낄 상대가 있게 된다. 아상(我相)이 있으니, 인상(人相)과
중생상(衆生相)도 있다.

요컨대 거리낄 일은 모양[相]을 좇아다니며 모양에 구속되어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스스로 모양을 좇아다니지 않고 모양에서 벗어난다면 거리낄
상대를 세우지 않는다.

그러므로 공부란 모양을 좇아다니지 않고 모양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어떻게 하여야 모양을 좇아다니지 않고 모양에서 벗어나는
것일까?
분별하고 판단하는 일을 멈추면 된다.

어떻게 분별하고 판단하는 일을 멈추게 될까?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내버려 두는 단호하고 정직한 결단이
필요하다.

이름과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로 분별하고 판단하는 일이므로,
이름과 뜻으로 이해하는 일을 단호하고 정직하게 포기하는 것이다.

참으로 솔직 담백하게 꾸밈 없이 모든 알음알이를 포기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 즉시 바로 가벼움을 느낄 것이다.

분별하고 판단하는 일을 멈추는 또 하나의 길은, 분별하고
판단하는 일의 진정한 본질이 무엇인가를 가장 엄밀하고 정확
하게 찾아 보는 것이다.

즉 스치며 지나가는 허망한 이름과 뜻을 남김 없이 제거하고,
분별하고 판단할 때마다 반드시 나타나는 변함 없는 것이
무엇인가 찾아 보는 것이다.
단, 이 변함 없는 것은 이름과 뜻이 아님을 명심하여야 한다.

분별하고 판단할 때에 변함 없이 나타나는 이것은 스쳐 지나가
는 이름과 뜻이 아니라, 이름과 뜻이 스쳐 지나가는 바로 그
속에서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다양한 물결을 이루며 냇물이 흘러 지나갈 때, 그 흐름
속에서 물을 감지할 수 있는 것과 같다.

흔들리는 물결은 곧 물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지금 의식 속에서 온갖 생각과 느낌이 스쳐 지나가고 있다.
바로 이러한 때, 온 힘을 기울여, 스쳐 지나가는 생각과 느낌의
흐름 속에서 그 흐름을 변함 없이 만들어 주고 유지시켜 주는
흐름 그 자체를 경험해 보라. 흐름은 흘러갈 뿐이다.

언제나 흘러갈 뿐이지만 변함 없이 이 자리에 있다.
이름과 뜻은 변화 무상한 허깨비일 뿐이고, 이 흐름이야말로
진실로 이름도 모양도 뜻도 붙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지만,
변함 없이 지금 이 자리에서 경험되는 유일한 것이다.


- 임제 의현(臨濟 義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