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대사의 관세음보살 기도이야기
성운대사의 관세음보살 기도이야기
불교에는 많은 기도가 있지요. 약사여래 부처님 기도, 문수보살님기도와 같은 불, 보살님들의
기도와산신기도도 있고 낙태 및 유산된 영가들을 위한 기도도 있고요. 이 기도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기도는 관세음보살님 기도일껍니다. 관세음보살님! 중생의 소리를 관하시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는
정말 멋진 보살님!! 모든 이들의 자비로운 어머니이자 아버지시며 정말 훌륭하신 분이시죠.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불자 아닌분들을 비롯해서 일부 불자분들
사이에서 기도란 바른 수행이 아니다.
또는 참된 불자라면 마음닦는 수행을 해야지 기도를 해선 안된다!
라고 말씀하시고 마치 기도를 미신적인 행위인양 여기는 분들이 계신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건저내시겠다는 불, 보살님들의 원력에 매달리는 기도가 어찌 잘못된 것이겠습니까? 더욱이 절에서도 제가 듣기로 수행이 잘 되지 않을때는 한바탕 기도를 크게 해서 업장을 소멸하면 공부가 잘 된다고 기도를 시키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기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중국의 성운대사님이 직접 겪으신 기도일화를 한편 소개하고자 합니다. ----------------------------- 각종 수행중에서 제가 가장 크게 덕을 본 것은 '예불'입니다.
최근에는 다리 수술로 예불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과거 매일 아침저녁마다 부처님들께 절하는 데 반 시간이 걸렸습니다.
시간은 길지 않지만 되도록 중단 없이 꾸준한 의지를 가지고
매일 계속했습니다. 15살때 수계 받으면서 계인을 태우는데, 머리 뼛속까지 타들어갔습니다.
그 후 갑자기 기억력이 떨어졌습니다.
[고문관지],[사서독본]을 읽어도 도저히 외울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열심히 노력을 안 한 것이 아니라 아무리 열심히 외워도 기억에 남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어도 외울 수 없어 저를 지도하던 각민 스님에게 무릎을 꿇고 벌을 받거나 손바닥을 맞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하루는 또 외우지 못한 저에게 교무주임 각민 스님이 매를 내리치시며 호통을 쳤습니다. "이런 바보녀석! 관세음보살에게 지극 정성으로 절을 하면서 총명하고 지혜롭게 해 달라고 빌어야지."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스승님이 때리는 데도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등불 하나가 켜지며 마음이 갑자기 밝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아, 관세음보살에게 지극 정성으로 절을 올리면 총명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거구나. 나도 이제 희망이 있다. 희망이 있어.' 태어나면서부터 총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멍청하지도 않았던 저는 수계 때 기억력이 저하된 이후 제 인생에 이제 미래란 없을 것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관세음보살에게 지극 정성으로 절을 올리면 총명과 지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불현듯 제게도 희망의 불꽃이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문제는 당시 총림 고찰 안에는 관세음보살에게 예불을 드리고 싶어도 그럴 만한 장소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웅보전은 아침저녁 예불을 할 때 이외에는 아무나 함부로 출입할 수 없었고, 다른 전각도 각기 다른 당주가 있었습니다. 불학원 내에서 공용으로 쓰는 작은 불당 이외에 어딜 가서 관세음보살에게 예불을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깊은 밤 모두가 잠든 시간마다 몰래 불당으로 가 홀로 관세음보살을 외쳤습니다. "세상 가득하신 관세음보살님께 보리심을 발원합니다.
제자 마음이 어지러워 관세음보살님께 절을 올립니다.
똑똑하고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기원합니다. 대자대비하시고 세상을
고난에서 구하시는 관세음보살님께 기원합니다." 이렇게 외치고 난 뒤 절을 올렸습니다. 대략 30초정도 머문 뒤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외쳤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이렇게 외치면서 절을 했습니다. 한 번, 또 한 번........ 관세음보살님께 절을 올리고 얻은 영험담은 수없이 만습니다.
누군가는 절을 한 후 관세음보살님이 감로수를 머리에서 부어
주었다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부끄럽게도 제게는 그런 일들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3~4개월이 지난 다음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관세음보살께
절을 올리기 시작한 이후로 저의 기억력이 갑자기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전보다 훨씬 더 좋아졌습니다. 전에는 [고문관지]한편을 두세 번 읽어도 외울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두세 번 만에 다 외울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전국책],[사기]에 나오는 단편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한 번 보기만 해도 기억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문장들은 저의 입가를 맴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랑또랑하게 외울 수도 있습니다. 특히 행운이었던 것은 마침 그때 불학원 측에서 제게 도서관의 관리를
맡긴 것입니다.
도서관은 원래 서하사범대학교 소유였지만 군대를 따라 후방인
중경으로 후퇴하면서 서하불학원에 책들을 남겨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책 중에 어느 것을 먼저 읽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승님과 사형들이 어떤 책을 가져가 읽는지 주의 깊게
봐두었다가, 그들이 책을 반납하고 나면 제가 가져다 읽었습니다.
그 중에 특히 시골 사범학교의 문예집과 각종 문예소설이 제게 커다란
도움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평생 수많은 고행을 아무런 불평없이 받아들였지만 크게
좋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것은 정말 흥미롭고도 더할 나위 없는 즐거운 일
이었습니다.
그 당시 [삼국연의] [수호전] [칠협오의] [소오의] [봉신방] [탕구지]
등의 책들은 한 번 보면 모두 기억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도 가끔 제자들과 모임을 가질 때면 제가 읽었던
[삼국연의] 중 '제갈량이 동풍을 빌리다'라든가, '조맹덕이 화용도로
패하여 쫓겨 가다'라는 흥미진진한 구절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제가 읽어주는 부분들은 모두 책 속에 있는 원문 그대로였으므로
제자들 모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곤 했습니다. 가끔씩 저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 생각없이 [수호전]의
한 구절을 얘기할 때가 있습니다.
양산박의 108영웅들의 이름과 호, 복장, 무기등을 하나하나 줄줄
말했습니다.
제자들은 제가 젊었을 때 본 책을 아직까지 이토록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감탄해 마지 않습니다. 저의 일생에는 관세음보살님과의 인연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무척 많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젊은 제자들의 수행은 언제나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것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절을 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고, 나를 낮추고 더욱 겸손함을
키울 수 있으며 부처님께 마음속의 말을 토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 절을 올릴 때는 몸을 숙이게 되지만 마음속의 감정은
승화시켜 부처님과 호응해야 합니다.
'북은 쳐야 소리가 나고, 종은 두드려야 소리가 울린다' 하였습니다.
지극정성으로 절을 하는데,
부처께서 어찌 자비심을 보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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