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法僧의道
[스크랩] 오로지 한 주인을 섬기듯 부처님을 섬기라
天 山
2014. 1. 5. 22:09
오로지 한 주인을 섬기듯 부처님을 섬기라
내 안에 영원성의 주인공이 함께 하신다
내 안에 영원이 숨 쉬고 있다
모든 게 다 변해간다.
생각도 행동도 끊임없이 변해간다.
어제의 생각이 다르고 오늘의 생각이 다르다.
어제 오늘이 문제가 아니고 순간순간이 문제다.
생각 따라 상황이 숨가쁘게 변해가기에 사람들은
그 빠른 변화에 대처하느라 힘겹다.
자승자박이라고나 할까. 자업자득이라 할까.
뭔가 현기증 나는 현실을 탈피하기 위해 쉴 곳을 찾는다.
절이라든지 여타 종교시설을 찾는 것이
그 같은 이유 때문일 게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현실 가운데 변하지 않는,
변함이 없는 그 무엇을 찾으려한다.
휴식이란 말이 호흡을 가다듬는다는 뜻인 것처럼
세상사에 휩쓸리다 보면 호흡이 가빠진다.
자연히 정신이나 육신에 미치는 영향력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호흡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명상, 참선에 마음을 돌리면
잠자던 마음의 영원성이 눈을 뜬다.
또 다른 나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
참나의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자신 안의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되면 숨가빴던 마음은
안정을 찾게 된다.
내 안에 참나를 만나 본 적이 있는가.
참나를 만나는 순간 우리는 영원성과 하나가 되고
무한한 부처님의 에너지를 나의 것으로 하게 된다.
사람들은 무아의 경지라 하는 세계를 말로만
들어 알고 있지 실제론 무아의 세계를 체험하거나
그 위대한 힘을 체득해보지 못한 채 인생을 산다.
삶을 끝낸다.
끝없이 변해가는 삶 가운데 영원의 나를 만나 보라.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게 될것이다.
영원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누에를 보자.
누에는 한참 뽕잎을 먹는다.
때가 되면 고치를 짓고 그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한다.
점차 고치 속에서 변해 번데기가 된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번데기가 고치를 뚫고 나간다.
나방이 되어 하늘을 난다. 때가 되면 나방은
알을 낳고 자신의 수명을 다한다.
알에서 나와 누에로부터 번데기, 나방이 다시 알이 되는
-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계속 몸은 변해가지만 그 밑바탕에
어떤 연속성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람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몸이 60~70kg이 나가기 때문에
“당신은 과거 정자와 난자였소”하면 의아하게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모두 수정란인 알에서 나와
모태에서 갖가지 변화 과정을 겪으면서 태아가 된다.
모진 고생을 겪은 끝에 사람 몸을 받아
이 땅에 빛을 보는 것이다.
계속 변해가며 성장한 끝에 어른이 되고 또 결혼을 하고
자신의 분신을 이 세상에 출현시키고 때가 되면 떠나는 것이다.
그 자손 역시 계속해서 대를 이어가며 영원성을 유지한다.
변해가는 세계는 유한의 세계이지만 영원성의 세계는
무한의 세계다.
만상이 하나같이 현상계가 변해서 사라지는 존재들이지만
- 그 바탕에는 예외 없이 영원성이 깔려 있다.
무상이기에 무아이고 해탈이요 열반인 것이다.
끝없이 변해가면서 영원성을 갖게 하는
무서운 힘의 원천은 과연 무엇일까.
변해가는 것도 영원으로 나아가려면 힘이 필요하다.
어떤 삶이 될 것인가는 어떤 마음이 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삼라만상에 모두 불성이 있다 하는 이유를 여기서 생각하게 된다.
변해가는 모든 것은 가상이지만 그 이면에 변하지 않는
영원의 실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세포의 세계도 계속 죽어가며 새로운 세포로 대체되어가듯
하나의 형태가 벗겨지는 그곳에 새로운 형태의 세계가 계속된다.
누구나 부분의 존재이지만 영원성,
전체성을 머금고 있기 때문에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본래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존재하던 것이고 눈에 보이는 세계는 모두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그림자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 마음의 세계는
영원이지만 보이는 세계의 것은 항상 한시적이고
일시적인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건강해야 보이는 세계가 건강한 법이다.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라 하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진실로 허공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혀
다른 차원의 형태로 존재하는 생명체들이 무수히 많다.
그들 역시 모두 어떤 형태로건 그들의 존재를 알리려 한다.
마음을 그들과 함께 하면 얼마든지 그들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지구상에 살다간 위대한 영혼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구도자들에게, 부처님과 진리를 따르는 자들에게
탁월한 도움을 베풀고 있음을 아는가.
그를 가피력이라 부르기도 하고 가호지묘력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떤 삶이 될 것인가는 어떤 마음이 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오로지 한 주인을 섬기듯 부처님을 섬기라
우리가 부처님을 항상 모시고 기도하며
정진하는 이유는 우주와 하나 되고 영원과
하나 되는 길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늘 희망차고 자신감에 넘치고 용기 있으며
목적이 분명해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되면
허공계 가운데 위대한 영혼들의 파장이 그에게 달려온다.
악한 생각을 버리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길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로지 한 주인만 섬기듯
- 부처님만 섬겨야 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오로지 부처님만 섬기는 사람의 원은
- 분명히 이루어지게끔 되어 있다.
초월해 있는 것 같지만 이 세상 만유 속에 어디나
깃들어 있는 부처님의 힘과 하나가 되는 길이
바로 기도의 길이요, 기도 가운데 우리는 무한의 근원과 연결된다.
고통이란 우리의 마음 가운데 부처님이 계심을 모르고
자신의 참모습을 모르기에 찾아드는 것이다.
무명 중생은 자신의 참모습을 모르는 자를 일컫는 말이다.
세상 모두에 영원성이 깃들어 있고 부처의
분신이며 하나라는 깨달음이 있을 때 내 것,
내 물건이라는 생각이 사라지고 미움은 끝이 난다.
이기심은 악덕이고 참생명에 대한 무지에서 생겨나기에
우리의 참모습을 깨닫는 순간 위대한 힘을 지녔던
놀라운 존재들과 하나로 연결된다.
자신을 부처님과 분리시키는 것이 무명이며 무지다.
무명중생들은 자신의 본질을 모른다.
부처를 섬기는 일이 자기를 섬기는 일인지를 모른다.
- 지광스님 -
출처 : 백운사와 물소리
글쓴이 : 至公居士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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