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1600 여년만에 완전히 무너지는 한국불교, 이제 불자들의 바른 이해과 행동만이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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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 바라밀, 우리도 부처님 같이...
어제 우연히 미국에 계시는 일아스님이라는 비구니께서 최근에 쓴 글을 보았습니다.
미국 현지에선 고국에서 불교신자였던 분들도 대부분 타종교로 개종을 하고, 현지 교민들은 '불교'
'절'하면 반무당집 정도로 치부한다고 하더군요.
특히 한국에서 '참선'공부하고 온 승려들은 전법포교에는 관심도 없고, 또 전법은 할 줄도 몰라 엄두도
못낸다고 하는, 그야말로 기가막힌 현실을 토로하고 있었습니다.
불자님,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우리불교는 이미 몰락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전법에는 생각도 없고, 또 전법을 어찌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승려들, 불교 지도자들, 불교학자들...
그저 관습적으로 찾아와 주는 신도들을 상대로 염불기도나 해주고, 많지도 않은 잿밥으로 연명하는
것이 대부분 우리 절집들 속 사정입니다.
일아 스님은 통렬하게 비판하셨더군요.
승려교육을 완전히 개혁하고 전국의 강원을 모두 폐쇄해야 한다고...
불자님,
저는 이제 불자님, 당신께 묻습니다.
절에서, 법회에서, 불교대학에서...,
승려들이, 지도법사가, 불교학자가
업정소멸 해야하니, 108배 하세요, 1,080배 열심히 하세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일체 의심 버리면 이루어지니 염불기도 열심히 하세요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무량한 공덕과 가피가 있으니 독경사경 경전공부 열심히 하세요
일상사 일체 잊고 오로지 화두들고 참선공부 열심히 하세요
(최근엔)
행주좌와 일거수 일투족 세밀히 관찰하며 위빠사나 열심히 하세요
이런 소리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 않으셨나요?
그래서 우리 불자들, 정말 열심히 그렇게 믿고 열심히 하지 않으셨나요?
그런데,
이 땅에 불교가 전래된지 1,600 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우리불교가 너무나도 무기력게 몰락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제각각인 잡동사니 따로국밥 불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처절하게 불타고 무너지는 그 속에서도,
우리절 내세우는 종파불교에 안주하고있습니다.
우리스님 내세우는 추종불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종파불교... 추종불교...
우리 세대에 와서 불교가 이렇게까지 완전하 몰락의 길을 걷게 되다니.....
왜 이렇게 되었나요?
자업자득이라....
다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압나다,
불자님,
이제 두 눈 부릅뜨시고, 두 귀 활짝 여시고
이제 50 여년 전법고행의 현장에서 애쓰며 사신,
저 늙은 老 법사가 외치는 마지막 "우리들 불교" 회생의 출구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살펴보시길 청해 올립니다.
마하반야 바라밀, 우리도 부처님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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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자여, 제발 종노릇 그만하고 '당당主人'으로 나서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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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佛敎/대중견성’ 槪論
–부처님께서 하신 불교/우리들이 원하는 불교
전법 김 재영
<1> 序 論
1. 왜 ‘부처님’인가? 왜 ‘초기불교’인가?
자식이 고달프면 어머니 그리워하고, 나그네가 곤궁하면 고향을 생각한다. 어머니와 고향은 영원한 生
命의 母體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인생이 고단하기 때문에 어머님을 생각하고, 지금 한국불교가 곤궁
하기 때문에 부처님/초기불교를 생각한다. 부처님은 우리들의 영원한 母性이시고, 초기불교는 우리들의
영원한 故鄕이다. 가난한 자식이 어머니를 통하여 힘을 회복하듯, 우리도 부처님과 초기불교를 통하여
힘을 얻고 새로운 생명을 기약할 수 있다.
<몸소 해보기> ‘고향의 봄’ 함께 노래하기
2. ‘우리들 불교/불교학’을 찾아서
<생각할 문제>
우리는 초기불교로 돌아가려하는가?
‘초기불교’를 찾는 것이 ‘초기불교’로 돌아가자는 것일까?
‘초기불교’ 하자는 것일까? ‘남방상좌부 불교’ 하자는 것일까?
1) 이것은 불가능하다. 또 그래서도 안 된다.
–만물은 조건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것 ( )
–‘초기불교’는 이미 초기불교가 아니다. 부파들에 의하여 편집된 ‘초기 불교’
–‘초기경전’ 또한 부파들에 의하여 편집된 경전
–좋은 자료/原鑛, 여기서 雜石들을 골라내고 붓다의 삶, 곧 Dhamma를 발굴해내는 것이 초기불교 공부하
는 목적
2) 우리는 ‘우리 시대의 불교’, ‘우리들의 불교’하려는 것이다.
–초기불교 통하여 ‘부처님께서 하신 불교’ ‘붓다 석가모니께서 하신 본래불교’, 곧 ‘붓다의 불교’의 源泉/
原形을 찾고 動力을 얻어서
–그 흐름에 입각하여 ‘우리들이 원하는 불교’ ‘우리들이 원하는 우리 시대의 불교/불교학’, 곧 ‘우리들의
불교/불교학’을 성공적으로 발전시키려는 것이다.
–‘우리들 불교’는 ‘부처님께서 하신 불교’를 오늘 우리 時代, 우리들의 삶의 現場에서, ‘우리들이 원하는
불교’로, 우리 時代 열심히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bahujana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불교로 새롭게 살려내
려는 불교운동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전문가들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또는 관행적으로 조작된 非本質的 非Buddha적 불교
를 끊임없이 요구받고 허덕이며 따라왔다.
; 교학중심주의, 출가우월주의, 수행신비주의 등
–이제 우리들 자신이 불교의 주인으로, 주역으로 나설 때다.
3. ‘우리들 불교’가 찾아가야 할 거의 유일한 출구
1) 새로운 출구 ; ( )
☸ ‘아난다여, 그대들 자신을 등불삼고
그대들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라.
남을 귀의처로 삼지 말라.
그대들은 담마를 등불 삼고
담마를 귀의처로 삼아라.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말라.’
아난다여,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을 등불삼고 담마를 등불 삼는 것인가?
곧 사념처를 닦는 것이다.
이리하면 누구든지 최고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대반열반경 2, 26 ; D Ⅱ 100)
–'Atta–dipa, Atta–sarana
Dhamma–dipa, Dhamma–sarana'
–세계 인류사상 가장 경이로운 진리의 선포, 인류구원의 완성
–神과 人間, 일체의 권위로부터 벗어나다. 해탈 열반의 실현
–혁명적인 發想의 전환, 새로운 三寶의 발견
① Parisa
–Atta ; 그대들 자신, 우리들 자신
–우리들 함께 모여 등불 되고 귀의처 된다.
–우리들 공동체, 많은 사람들의 공동체 ; ( )
–불교는 홀로 하는 것이 아니다. 孤立獨善/獨覺의 길이 아니다. 붓다의 길/깨달음의 길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는 길이다. ; ( )의 本質的 理念
–Parisa, 곧 우리들의 공동체가 우리들이 등불 삼고 귀의해햐 할 영원한 보배
② Buddha
–Dhamma는 곧 Buddha Sakyamuni의 절절한 大悲의 삶
–팔순 老Buddha의 고백
<몸소 해보기> ‘Vesali 대법문’의 ‘팔순 老붓다의 고백’을 외워 써본다.
–Buddha의 이 절절한 大悲의 삶이 우리 Parisa들이 등불 삼고 귀의해야 할 영원한 보배
③ Sati
–Atta–dipa Dhamma–dipa의 구체적 내용/삶이 무엇일까?
( ), 곧 Sati이다.
–Dhamma의 긍극적 실체는 곧 ( )이다.
–이 Sati가 우리 Parisa들이 등불 삼고 귀의해야 할 영원한 보배
2) ‘대중견성’이란?
① 대중들, 곧 열심히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 바로 우리가 깨닫고
② 바로 우리가 불교와 사회의 주인/주역 되어서
③ 이 사회/세상을 법답게/정의롭게 바꿔가는 삶/운동
3) 깃발 ; ‘우리도 부처님같이’
4) ‘대중견성’은 무슨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불교는 본래, 본질적으로 대중견성이다. 붓다의 불교는 본래, 본질적으로 소수의 뛰어난 전문가들/
上根機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bahujana)의 깨달음, 곧 대중견성(大衆見性)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대중견성’이란 말을 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 ‘전법하러 떠나가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
곧 ‘많은 사람들의 깨달음을 위하여’ ('와라나시 사슴동산의 전법선언‘, 『초기율장(Vinaya–pitaka)』
「대품(Mahavagga)」1, 11, 1 ; Sanyutta–nikaya, 'Pasa–sutta' ; S Ⅰ 105)
* ‘가르침대로 따라 행하면 누구든지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웨살리 대법문’, 『대반열반경』2, 26)
* ‘ehi–passika', '와서 보라, 눈 있는 자는 누구든지 다 볼 수 있다.’
(『쌍윳따니까야』「제1 천신 쌍윳따」, ‘사밋디경’ ; S Ⅰ 9)
5) ‘견성’이 무엇일까? ‘깨달음’ ‘대중견성’이 무엇일까?
1>우리 불교/불교도 ‘깨달음’에 묶여있다.
–‘견성’/‘한소식’에 사로잡혀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 ‘수행’이란 이름으로 십년 이십년 앉아 용쓰면서
소극적 은둔주의에 함몰되어 있다.
–力動的 生命力 상실, 사회적 리더십의 상실, 몰락의 길로 치닫고 있다.
2> ‘깨달음’/해탈열반/견성성불, 단순명료하다.
① ‘눈뜨는 것’ ‘눈이 생겨나는 것’ '법의 눈(法眼)이 생겨나는 것‘
–붓다의 정각선언 ; ‘cakkhum upadi’ (S Ⅴ 42)
dhamma–cakkhum upadi ((S Ⅴ 43)
② 눈뜨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如實知見, yathabtam–nadassana)
– ‘생겨난 것은 그 무엇이건 반드시 소멸하고 사라져가는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것
③ 알고 보고 열심히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
–알고 본다는 것/깨닫는다는 것온 곧 그대로 행위하는 것, 살아가는 것, 탐욕을 극복하고 다함없는 연민
과 헌신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은 理論이 아니다. 理論으로 敎理로 알려고 하지 말라.
부처님을 보라, 부처님의 삶을 보라. 부처님과 초기 성중들은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이렇게 사셨다. ;
‘붓다의 죽음’ (대열반)
–우리도 부처님같이 살아가려고 끊임없이 애쓰는 것
–우리도 부처님같이
다함없는 연민과 헌신으로 중생구원의 삶을 살아가는 것, 곧 사회적 실천/사회적 헌신의 삶을 통하여 구
원과 법다운/正義로운 변화를 실현해가는 것’
④ 佛子聖衆들의 삶의 길 ; ‘헌신과 구원, 이 세상의 정의로운 변화’
–‘사회적 헌신’ ‘사회적 실천’
–( ) ( )
3> 더 이상 없다.
–찾아 헤매며 아까운 인생 허송하지 말라.
–‘관념의 늪’에 빠질뿐.
4>깨달음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삶/행위의 문제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自性/自我는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삶/행위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
–붓다의 구호 ; ‘ehi passika/에히 빳시까’(come and see)
– ‘마음에서 삶/행위로’, 일대전환이 요구된다.
5> 몸바쳐 헌신하고 소리 높여 구원을 외쳐라.
마음의 어둔 소굴을 박차고 이 햇빛 쏟아지는 광활한 삶의 현장으로, 사회적 헌신의 현장으로 나오라.
‘우리 불교도는 이 세상을 구원하러 왔다’ ‘우리 불교도는 이 세상을 구원하는 거룩한 성중(聖衆)이다,
아리아 빠리사(Ariya Parisa)다, 보살성중이다’, 이렇게 소리 높이 외쳐라. 드높은 긍지를 가져라. 堂堂主
人 되라, 바로 이것이 대중견성의 길이고 대중견성운동이다.
6> 성공이 지금 우리들 目前에 와 있다.
4. 증거 ; 부처님/초기불교의 빛나는 성공
1) 부처님은 처음부터 대중견성운동 추구하셨다.
“가르침[dhamma, 法]따라 열심히 살아가면, 누구든지 깨달을 수 있다.
위없는 청정을 실현할 수 있다. 평온과 존엄, 자유/해탈 열반/不死(amata)를 실현할 수 있다.
귀천도, 우열도, 남녀도, 출‧재가도 어떤 차별도 본래 존재하지 아니 한다.”
–이것이 붓다께서 45년간 몸바쳐 사자후하신 Dhamma의 핵심이다.
–붓다의 삶을 따라 진지하게 살아가면, 누구든지 평등하게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이 곧 ‘대중견성의 Dhamma'이다.
2) 수많은 민중들/시민들 위없는 청정 실현 ; 『붓다의 대중견성운동』
“어리석은 사내들이 눈독 들이던 이 육신을 아주 보기 좋게 단장하고, 그물을 던져놓은 사냔꾼처럼, 저는 창가(娼家)의 문
에 서 있었습니다.
은밀하게, 또는 드러내놓고, 요란한 몸단장을 과시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희롱하고, 갖가지 야릇한 짓을 했습니다. …
천상계와 인간계의 멍에를 모두 벗어던졌습니다. 일체의 탐욕을 떨쳐버리고, 저는 홀가분하고 편안합니다.“
–‘Vimala 비구니의 고백’ (테리가타 5장 72–76)
3) 부처님의 출현, 初轉운동
–인도 민중들의 일대 충격/희망, 밀물처럼 밀려들다.
붓다 석가모니는 인도민중들의 절실한 待望 속에 오시다.
–‘Buddhist India'의 실현, 인류사상 최초의 빛나는 성공
4) 막연히 법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부처님과 초기불교가 현실적으로 인도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
기 때문이다. 사회적 모순과 고통을 치유하고 새로운 理想社會의 가능성과 희망을 구체적인 삶을 통해
서 입증해보였기 때문이다.
5) 부처님/초기불교의 성공의 비결은 현실적인 사회적 실천/사회적 변혁이다.
–사회적 실천/변혁은 ‘불교의 本質’이며 신명을 걸어야할 ‘불교도의 本分事’
<연구문제> 붓다 당시 인도민중들이 직면했던 사회적 고통/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고통의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불교는 교리적으로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5. ‘우리들 불교/대중견성’,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1) 어떻게 사는 것인가?
– ‘Buddha의 삶을 등불 삼아
- Parisa에 함께 모여 부처님 공부하고, 많은 사람들 나누고 섬기면서
- 순간순간 Sati하며 안팎으로 담담하게 지켜보며 열심히 살아간다.‘
2)'우리들 불교/대중견성'의 세 가지 Key–word
; ( ) ( ) ( )
–이 3가지 Key–word 명심하라.
불교, 곧 우리 삶을 확립하는 三大礎石/주춧돌이다.
<몸소 해보기> '대중견성'의 세 가지 Key–word‘ 10번씩 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