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法僧의道

“나는 불자요, 진리생명…10번씩 외치길”

天 山 2012. 2. 5. 21:55

“나는 불자요, 진리생명…10번씩 외치길”


 

1970~1980년대 한국불교 현대화와 대중화에 큰 족적을 남겼던 스님으로 평가받는 서울 불광사 광덕스님(1927~1999, 사진)의 살아생전 생명언어 가득한 법문내용이 한권의 책에 오롯이 담겼다. 광덕스님 열반 9주기를 기해 발행된 법문집 <마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99년 스님이 열반에 들기 전까지 주로 설한 법문 중에서 그동안 미 출간됐던 법문들을 중심으로 담은 것이다.
 

한국불교의 현대화와 대중화에 신 새벽을 열었던 스님의 법문집인 만큼 일반불자들과 신행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겪었던 구체적 신행사례담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여느 딱딱한 법문집과 달리 쉽고 재미있게 읽으며 ‘마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는 마음의 법칙과 행복의 법칙, 우리의 진실생명이 무엇인가를 읽는 이 스스로가 깨달아갈 수 있게 만든다.

또 책을 읽고 있으면 진정한 행복, 행복으로 가는 길이 생명의 언어로 가득 살아 숨쉬는 느낌이다. ‘우리 몸이 소중한 까닭’ ‘죽지 않는 법’ ‘최상의 기도법’ ‘미운 사람이 있거든…’ ‘마음이 일체를 이룬다’ ‘원인 없는 병은 없다’ 등등. 마치 카랑카랑한 생전의 육성을 바로 앞에서 듣는 듯 힘에 넘친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마음은 창조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념이 담긴 말을 한다는 것은 자기 운명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많은 불자들에게 그런 말을 해왔고, 또 많은 불자형제들도 그렇게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사실인즉 ‘일체유심조’, 근본이 마음이고 마음이 온 우주와 온 생명과 이 몸과 우리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행복은 부처님께서 보이신 바 진실생명을 믿고 생각하며 몸으로 행하는 가운데서 우리의 생활 현장에 구체적으로 어김없이 이루어지는 법칙”이라 평소 의견을 밝혔던 스님은 세파에 휘둘려 나약해지고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외치기도 한다.

“나는 불자다. 부처님의 진리생명이다. 건강하고 행복하다. 오늘 하루 좋은 일이 찾아온다라고 매일 10번 이상 소리를 내서 말하고 일어납시다. 그리고 내 생명 가득히 부처님의 진리가 태양처럼 솟아오른 것을 마음의 눈으로 지켜봅시다. 진리의 태양이 나의 생명, 나의 가정, 나의 사업, 우리 겨레 위에, 다시 온 누리 중생에게 퍼지는 것을 생각하고 저들 모두의 평화, 행복을 기원합시다.”

법문 중간 가끔씩 솔직하게 털어놓는 스님의 고백을 읽는 것도 법문집의 묘한 매력이다.

“제가 책 좀 읽었다고 해서 종단에 징발되어 10년 가까이 종단 장내에 나와서 종단행정에 관여했던 것을 아실 겁니다. 그러다가도 틈만 있으면 팽개치고 산으로 달아났습니다. 꿩이 생각은 콩밭에 가 있다더니 도시에 나와 있으면서도 산중으로 달아나서 참선만 하는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월간 ‘불광’을 만들게 되었고 우리 형제들을 만나게 되고, 불광 형제들을 만나 여러 형제들과 더불어 이렇게 살게 되었습니다.”

책은 이와 함께 부처님오신날, 출가, 성도, 열반에 대한 법문을 통해 부처님의 출가와 깨달음 그리고 열반에 드신 진정한 의미와 가르침을 전한다. 백중 영가천도, 영가천도-그 궁금증, 영가를 위한 법문에서는 영가천도의 의미와 공덕에 대한 답을 해결한다. 아울러 일반인들이 쉽게 들을 수 없는 영가법문을 그대로 실어 읽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마지막 별록에 실은 당시 이계진 아나운서와의 대담은 스님의 출간인연 이야기와 수행담과 함께 인생의 보람, 무엇이 진실인가, 무엇이 정의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낱낱이 들을 수 있다. 자신감 넘치는 스님의 목소리를 직접 듣다보면 ‘만인은 본래 부처님으로서 존경받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거듭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법문집을 발간한 불광사 회주 지홍스님은 “열반에 드시기 전까지 대중들을 위해 끊임없이 설하신 스님의 법문은 만인의 가슴에 밝은 등불이 되고 있다”면서 “인간에 대한 절대긍정, 생명은 밝은 데서 성장한다고 하는 대긍정을 바탕으로 한 스님의 말씀은 어둠을 밝히는 밝은 횃불 그 자체였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