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法僧의道

[오늘의 명상] .진우스님

天 山 2019. 10. 1. 22:07

 [오늘의 명상] .진우스님



  “의상스님께서 계시는 토굴(의상대<義湘臺>)

지대가 높아서 가물때는

 가끔 물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었다.


비가 오지 않아 몹시 가문 어느 날,

 원효스님께 기별을 보내 형님이 오셔서

 물을 좀 나오게 해 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어느 날 원효스님께서 오셔서 주장자로

깊숙하게 땅을 뚫으니 금새 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리고는 점심을 기다리는데,

평소에 사시(巳時 9~11시)가 되면

 하늘의 천녀(天女)가 천공(天供)을 가져와서

 의상스님께 공양을 받쳤는데,

오늘따라 시간이 훨씬 지나도

오지않다가 한참이나 후에 도착하였다.


왜 이리 늦었냐고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온 산중에 화엄신장(華嚴神將)들이

물 샐 틈도 없이 지키는 바람에 일일이

설명을 하느라 이렇게 늦었다고 했다.


의상스님께서 원효스님의 법력(法力)을

깜빡 잊고 그 생각을 못했다며 형님께

참회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원효(元曉)스님과 의상(義湘)스님께서는

 의형제이시다


. 두 분이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으나,

원효스님께서는 중간에

 그 유명한 해골물을 마시고

마음을 깨치셔서 유학을 하지 않고

 돌아오게 되었고,

 의상스님만 혼자 유학길을 떠나게 된다.

의상스님께서 유학을 마치시고 돌아온 후에는

 주로 높은 곳에 토굴을 짓고 수행을 하였는데,

 부석사(浮石寺)를 비롯하여

울진 불영사, 무등산 원효사 등에는

 의상대라 하여

 지금도 많은 곳에 의상스님의

수행터가 자리하고 있다.

원효스님께서 창건하거나

 수행한 토굴, 가람 등에는,

 물이 넘쳐 흐르거나 바위 틈 등에서

물이 마르지 않고 흘러 나온다고 하는데,

이는 원효스님의 법력으로 자신의 주장자인

 지팡이로 물을 뚫었다는 전설에 의한 것이다.

이 두 분의 전설들은

1300년도 넘은 이야기이지만,

 어제 있었던 일과 같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이유는,

 다름아닌 두 분의 삶이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명명백백한 수행의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분별심(分別心)이 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두 분은 명리(名利)를 탐하지도 않았고,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며 자신들의

생각을 화엄(華嚴)이라는

깨달음의 바다로 회향하는 삶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무욕(無慾)과는

 전혀 상관없이,

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숭앙의 대상이 되고

깨침의 표상(表象)이 되는 데에는,

 오로지 좋고 싫은 고락(苦樂)의 분별(分別)이

 전혀 없었으므로,

그야말로 거품이 끼지 않은

 순수 알맹이만 남았기 때문이다.

좋고 싫은 것은 서로를

 의지하여 생겨나기 때문에,

어느 하나만이 있다거나,

 어느 하나만이 없을 수 없다는 것,

 이를 인과(因果)의 법칙이라 한다는 것


 그래서 그 어떤 것도 좋고 싫은

생사(生死) 생멸(生滅)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


 그러므로 이 둘을 분별하지 않아야

 둘 모두 사라진다는 것,

 이를 믿는 신심(信心)이 지극하게 되면

 마음을 깨닫는다는 것.

 그래야 기분이 나쁘거나 괴롭지 않다는 것.

수백 번 수천 번 강조해도


 아직도 분별하고

 집착하고 있는 분들이 대다수이니,

 늘 마음이 편치 않는 것이라는 것.

 만약 이 순간에도 좋고 싫은 고락의

 분별 감정이 일어나고 있다면,


지금 당장 방하착(放下着-즉시 놓음)해야 한다.

이 순간 이후의 일에 대해 조금이라도

걱정이 되거나 상념이 생겨나고 있다면,

이는 이미 생각의 병에 들었다 할 수 있는 것이니,


지금 곧 염불과 화두(話頭) 참선(參禪)으로

 생각을 잠재워야 할 것이다.


 무조건 이유불문이다.


 이유를 묻는 그 순간 그 자체가,

고락(苦樂) 인과(因果)의 늪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에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을 꾸준히 해 나간다면,

걱정 근심의 뿌리가 조금씩 잘려

 나가고 있다 할 것이니,

 절대로 중단하거나

신심(信心)을 잃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