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 없는 공간
도 닦는 이들이여!
그대들 눈 앞에서 작용하는 이것은 조사나 부처와 다르지 않다.
다만 그대들이 믿지 않기 때문에 곧 밖에서 찾지만, 착각하지
말라! 밖에는 법이 없고, 안에서도 법은 얻을 수 없다.
그대들은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취하기 보다는 일 없이 쉬
는 것이 좋다.
이미 일어난 것은 이어가지 말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은
일어나도록 버려두지 않으면, 이것이 그대들이 10년 법을 구하
여 돌아 다니는 것보다 더 낫다.
나의 견처에는 많은 것이 없다.
다만 평상(平常)하게 옷 입고 밥 먹으며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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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我)는 어디에 있는가?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도(道)는 어디에 있는가?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
자성(自性)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이 질문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도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확인 된다.
아무리 멀어도 눈 앞을 벗어나지 않으며, 귓 가를 떠나지 않으
며, 머리 속을 넘어서지 않는다.
도는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가깝다는 말도 해당되지 않는다.
도는 지금 이렇게 도를 묻고 찾는 움직임과 한 덩어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도는 지금 눈 앞에서 귓 가에서 머리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
과 한 덩어리라고 해야 할 것이지만, 눈 앞에 나타나 보이거나
귓 가에 울려 들리거나 손 안에 잡히는 그런 사물은 아니다.
도를 확인하는 경험은 평소 우리가 사물을 알아차리는 경험과는
성질이 사뭇 다르다.
그러므로 도에 관해서는 어떤 추측이나 예상도 알맞지 않다.
비유하자면 이와 같다.
여러 개의 방이 있는데, 각 방마다 구조며 벽지며 가구며 치장
이 제각각 다양하고 독특하여서 서로 잘 구별된다.
우리는 각 방마다 들어가서 제각각 다른 모습을 보느라고 정신
이 빼앗겨 있다.
그리하여 수십 개의 방을 거치면서 방마다 다른 모습에만 관심
이 쏠려서, 이전 본 방과 비교하기도 하고, 이 방이 좋은가 저
방이 좋은가 하고 따지기고 하고, 어떤 방은 기억 속에 담아
두기도 하고, 어떤 방은 쉽사리 잊어버리기도 한다.
수 많은 다양하고 새로운 모습의 방을 거치면서 우리는 새로운
모습에 항상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러나 한편으로 의식의
한 구석에는 변함 없이 한결같은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음도
느끼고 있다.
그러다 문득 어느 순간 이렇게 다양한 치장물들은 방의 핵심적
요소가 아니라 다만 가변적인 것일 뿐이고, 진실로 방의 제거
할 수 없는 본질은 내가 들어와서 걸어다니고 치장물들을 넣었
다 뺏다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지금까지 방을 돌아보고 찾아보고 알아본 경
험과는 성질이 전혀 다른 새로운 경험이다.
방의 구조나 벽지나 가구나 치장이라는 모양들에 관심을 기울
이고 살펴보고 알아보는 것과 공간을 깨닫는 것과는 사뭇 다른
점이 있다.
그러나 일단 공간을 깨닫게 되면, 이 공간이야말로 그 수 없
이 다양한 모양의 방들에서도 한결같이 방이 방일 수 있도록
해주는 본질적 요소임이 명명백백하여 도무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된다.
또 방들의 수 없이 다양한 모습들에도 불구하고 공간이 변함
없이 그 모든 모양을 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무언가 안심
시켜주고 안정되게 해준다.
우리가 매 순간 순간 경험하는 의식이 바로 이러한 방 구경과
같다.
의식에서 경험하는 내용은 늘 다양하기가 한정이 없지만, 그
모든 의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변함 없는 것은 의식
의 허공이다.
수 많은 모습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허공이 늘 이 자리에 있어
서 안정을 주고 있다.
이 허공을 깨달아야 한다.
- 임제 의현(臨濟 義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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