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法僧의道

낡은 것은 아름답다

天 山 2015. 11. 1. 21:22

 

 

 

    낡은 것은 아름답다
                                             / 법정스님
    예전에는 시인(詩人)이란 직종이 따로 없었다.
    글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시를 읊고 지었다.
    제대로 된 선비(그 시절의 지식인)라면
    시(詩), 서(書), 화(畵)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보편적인 교양이었다.
     ‘승려 시인’이란 말도 예전에는 없었다.
    경전을 읽고 어록을 읽을 수 있는 스님들은
    그 자신도 삶의 노래인 시를 짓고 즐겼다.
    시(詩)라는 글자를 살펴보면 말씀 언변에 절 삿자다.
    절에서 수행자들이 주고받는 말이 곧 시라는 뜻이다.
    바람과 달과 시냇물과 나무와 새와 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산중에서는,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
    언어의 결정체인 시의 분위기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선문답도 논리적으로 비약은 심하지만, 시의 형식을 빈 문답이다.
    지는 꽃향기 골짜기에 가득하고
    우짖는 새소리 숲 너머에서 들려 온다
    그 절은 어디 있는가
    푸른 산의 절반은 흰 구름이어라.
    늦은 봄날 절 안의 한가로운 풍경이다.
    꽃이 지고 새소리 들려오는 곳.
    그런 절은 어디 있는가고 묻는 이에게
    푸른 산의 절반은 흰 구름이라고 슬쩍 비켜서 답한다.
    속세의 먼지가 닿지 않는 흰 구름 속에
    묻혀 있는 절이므로 더욱 신선하다.
    서산대사 휴정 스님이 어느 산에서 읊은 시다.
    초가는 낡아 삼면의 벽이 없는데
    노스님 한 분 대 평상에서 졸고 있다
    석양에 성긴 비 지나가더니
    푸른 산은 반쯤 젖었다.
    다 허물어진 암자에 사는 노스님의 모습이 그림 같다.
    노스님이라 좌선이 곧 졸음으로 이어진 것.
    뻣뻣하게 곧은 자세로 앉아 있다면 노스님답지 않다.
    조는 그 속에서 선정 삼매를 이룬다.
    해 질 무렵 한 소나기 지나가자
    반쯤 젖은 푸른 산이
    대평상에서 졸고 있는 노스님을 받쳐 주고 있다.
    역시 휴정 스님의 ‘초옥’이란 시다.
    요즘은 큰절과 암자를 가릴 것 없이
    다들 물질적으로는 풍족하게 살기 때문에
    퇴락해 가는 절을 만나기 어렵다.
    그 속에서 사는 처지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지나가는 나그네의 눈으로 보면 번쩍거리는 절보다는
    얼마쯤 퇴락해가는 절의 모습이 그윽하고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벽이 무너져 남쪽 북쪽이 다 트이고
    추녀 성글어 하늘이 가깝다
    황량하다고 말하지 말게
    바람을 맞이하고 달을 먼저 본다네.
    조선 시대 환성 지안스님의 시인데,
    곧 허물어져 가는 오두막에 살면서도
    궁기가 전혀 없는 낙천적인 삶의 모습이다.
    벽이 무너지고 추녀가 벗겨져 나갔지만
    도리어 그 속에서
    자연을 가까이할 수 있음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다.
    하늘과 바람과 달을 집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예전 수행자들의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곧 하늘과 땅, 산과 강을 큰집으로 여겼던 것이다.
    옛것과 낡은 것은 아름답다.
    거기 세월의 향기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산방한담(山房閑談) 월간 맑고 향기롭게 2004년 04월-

     

     

    
    

    시길

    기원 합나다. -지공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