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法僧의道

[스크랩]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天 山 2013. 3. 31. 21:14

긍정의 힘

"三界는 唯心所現"이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잘 알 수 없어도, 자기의 마음으로 자기의 운명을 지배한다고 하는 것을 설명해 주면 이해가 쉽다.

세상만사가 自心의 전개다. 주위환경, 현상의 전반은 오직 자기내면(마음)이 객관세계로 모습을 갖추어 형상화한 것뿐이다. 내 마음 하나로 인생은 千變萬化하는 것이다. 이 이치를 체득하면 인생에서 자유자재하게 된다.

“마음에 깊이 새겨진 것은 반드시 나타나온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 좋은 면만을 봐야 한다. 이 세상은 '唯心所現'의 세계이니까 일어난 일은 어떤 것이든지 지난날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불행한 운명을 만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불행한 운명을 예지할 수 없기 때문인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법칙' 즉 '類類相從하는 법칙'과 '同類가 아닌 것은 반발한다'

불행한 사건을 당하는 사람들은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다. 자기의 '마음'속에 그 불행을 끌어들이는 불행의 씨앗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가르치고 계십니다.

밝은 곳에서는 화려하고 이쁜 꽃들이 피지만 어둡고 외진틈에서는 이끼나 곰팡이같은 것들이 모여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고 도둑놈들도 같이 마음에 맞는 놈들끼리 모이고 사기꾼들도 그렇게 그렇게 끼리끼리 의기투합이 되어 모이는 것과 같습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법칙과 '동류가 아닌 것은 반발한다'고 하는 법칙에 지배되고 있다고 깨달으면, 자기가 행운의 주인공이 되거나, 악운의 주인공이 되거나 하는 것은 이 법칙에 지배되고 있는 것이라고 알게 됩니다.

미래를 예지할 수 있다거나, 할 수 없다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기의 마음의 상태에 의해 악운을 끌어들이거나, 행운을 끌어들이거나 하는 것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행한 사건을 만나는 것은 누구를 원망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불행한 사건을 끌어당기는 [마음속의 자석]이란 무엇인가 하면 그 근본적인 것은 무한한 생명의 빛인 불성을 믿지 못하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나 이 무한한 생명의 빛인 불성을 철저하게 믿을 때라야만 어떠한 어두운 불행이 닥치더라도 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지혜를 광명, 즉 대천세계를 환하게 밝히는 빛으로 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괴롭고 두렵고 어리석은 것들을 암흑의 빛이 없는 무명의 어두움이라고 표현한다면, 아무리 오랫동안 그리고 깊은 어두움이라도 한 순간의 빛으로 밝아져버립니다. 천년만년 어두워졌다고 그것을 밝히는데 천년만년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닌 이치입니다.

그리고 다시 정리하면 [同類가 아닌 것은 반발한다]라고 하는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악운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법칙입니다. 괴롭고 나쁜 불행한 일들을 끌어 당길만한 여러 가지 마음가짐,

즉 어두운 마음가짐이라든가 편협한 마음이나 남이 잘되면 배 아픈 마음, 또는 옹졸해서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이런 마음을 버리고 명랑하고 밝은 마음 관대한 마음 평화롭고 침착한 모나지 않은 원만한 마음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내 운명을 바꾸는 가장 확실한 열쇠라는 말입니다.

국왕과 대신의 “참 다행이다”

언제 어디서나 “참 다행이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대신이 있었다.

국왕이 하루는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직접 보기위해서 민정시찰을 나가려고 날을 잡았다. 그런데 마침 그날이 아주 더운 날이었다.

옛날에 무슨 선풍기나 에어컨이 있었겠나?

그러나 그 대신이 하는 말은 “참 다행입니다.”

“이렇게 더운 날이 다행이라니 무슨 소리인가?”

“오늘처럼 더운 날 백성들을 살피러 나왔으니 그 백성들이 감동받지 않겠습니까?

국왕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보살핀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니 국왕의 명성이 세세손손 퍼질것이니 이보다 더 좋은 날이 어디있겠습니까”

또 한참이 지나서 국왕이 민정시찰을 가고자 날을 잡았는데 그날은 하필이면 장대줄비가 내려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 대신은 또 아니나 다를까 “참 다행입니다”라고 말을 했다.

국왕이 또 그 대신이 무슨말을 하나 궁금해 들어보니, 그 대신하는 말이

“이 비오는 날에도 국왕이 번거롭게 생각하지 않고 백성들을 찾아가 살펴봐준다면, 그 백성들은 우러러 존경하고 깊이 감복할 것입니다.”

국왕이 또 대신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다 싶어서 비오는 날 사실은 가고싶지 않았는데 그 말에 혹해서 민정시찰을 나섰다.

그런데 비가 많이 와서 길이 파여서 그만 국왕이 타고 있는 마차가 미끄러져 굴러서 국왕이 아주 심하게 다쳤다. 그래서 손가락하나가 부러져 버렸다.

그때 옆에 있던 그 대신이 하는 말 “참 다행입니다.”

국왕이 그 말을 듣고 열 받아서 아니 내가 이렇게 손가락이 부러졌는데 다행이라고 하면서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왕궁에 돌아와서 아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괴심하다.

비오는 날 민정시찰 가기 싫었는데 참 다행이다라고 말하더니, 또 마차가 굴러서 손가락이 부러졌는데도 참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대신을 어떻게 죽이면 속이 시원할까 생각하면서 열받아 마음을 식힐 생각으로 사냥을 갔다.

사냥하다가 보니 홀로 떨어져 길을 잃었다.

그러다 야만족 부락에 들어가 잡히게 되었다. 그 야만족은 살아있는 사람을 잡아다 자기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부족이었다.

마침 왕이 길을 잃고 헤메다 잡히게 되었는데, 제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신들에게 바치는 제물은 오관단정하고 아무런 하자가 없어야 신들이 기뻐할 것이므로 신중히 선택해야했다.

그래서 잡은 왕을 보니 오관단정하고 풍체도 좋고 복덕상에 때깔이 기가 차게 좋은 제물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다 좋은데 손가락이 부러져 있어서 부정탄다고 보내줬다.

국왕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왕궁으로 돌아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 손가락하나 부러진 것으로 내 목숨을 바꿨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대신 말이 맞았다. 그래서 감옥에 갖힌 대신을 풀어주었다.

국왕이 대신에게 “너의 말대로 손가락이 부러진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하고 그에게 옥에 가두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때 대신이 하는 말 “그런 말 하지 마시라고 옥에 갇혀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왕이 또 무슨 말인가 하고 들어보니 “만약에 제가 옥에 갇혀 있이 않았으면 분명히 왕을 따라 나섰을 것이고, 그럼 그 야만족에게 사지멀쩡한 제가 잡혀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니 이 또한 참 다행입니다”라고 말하더라.

항상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고 일어나는 그 허망한 생각들을 내려놓을 때

나의 참마음에서 밝은 지혜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는 것은 자신의 삶을 밝게 만들어 준다.

부처님 초기경전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것을 쫓아가지 말라.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바라지도 말라.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도 순간순간 변해가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의 현재를

깨어있는 정신으로 온전히 살지 않으면 안 된다.

- [중부경전]

지나가버려 바뀌지 않을 과거에 집착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면 우울증에 빠집니다. 그리고 오지 않은 내일 일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임을 부처님께서 일러주고 계십니다.

금강경에서도 이러한 비슷한 내용이 있어 소개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이라고 하셨다.

즉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하셨다. 과거라는 시간은 지나가버렸기 때문에 취할 수 없고, 현재의 마음은 찰라 간에 없어지므로 잡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은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얻을 수 없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덕산선감(德山宣鑑)선사의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덕산선감선사는 주금강(周金剛)이라는 별명으로 통했을 만큼

『금강경』에 무소부지로 통달하였다는 자신만만한 스님이었습니다.

그때 남방에는 참선 공부를 하는 선지식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문자를 세우지 않고 (不立文字)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直指人心) 자성을 보아 부처가 되게 (見性成佛)' 하므로 사람들이 구름 떼같이 몰려든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주금강은 이런 마구니들을 쳐부수어 불법을 바로잡으리라 결심하고, 자기가 손수 지은 『금강경』 소초(疏抄)를 짊어지고 남방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길을 가던 중 떡장수 노파를 만나게 되었는데, 때는 마침 한낮이어서 점심을 하고자 노파에게 점심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노파가 "스님이 짊어진 것이 무엇이오?" 하고 묻기에 덕산스님은 자랑스럽게 자신이 금강경을 해석한 『금강경』소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노파는 다시 말을 이어 "스님에게 『금강경』에 있는 구절을 묻고자 하니

대답을 하면 점심을 올리겠고 대답을 못하시면 점심을 못드리겠소." 하였습니다.

이에 덕산스님은 "무슨 말이든 『금강경』에 나오는 말이면 다 물으시오." 라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하였습니다.

노파는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과거의 마음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하였는데, 스님은 어느 마음에 점(點心)을 찍으시겠읍니까?“

다시 말하면 과거의 마음은 흘러가 버렸고 미래의 마음은 오지 않았고 현재의 마음도 시시각각 흘러가버리니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점심을 드시겠는가하는 말이다.

덕산스님은 이 말에 가슴이 탁 막혀 무엇이라고 대답을 못하고 안절부절 하였습니다.

자기는 금강경을 앞으로 뒤로도 외울 뿐만 아니라 그 뜻을 해석하는 책까지 쓴 사람인데 그 노파의 한 마디 선구에 탁 막혀버렸다.

이것을 본 노파는 그에게 남방으로 가면 용담선사(龍潭禪師)라고 하는 선지식이 있으니 그리 가시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덕산스님은 배를 쫄쫄굶고 머리도 못들고 그길로 노파의 말대로 용담선사를 찾아갔습니다. 도착하자마자 그래도 패기는 살아 있어서 용담스님의 이름으로 객기를 부려 말하기를 "오래 전부터 용담이라는 명성을 들었는데 와서 본즉 용도 보이지 않고, 못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을 던졌더니 용담선사는 "자네가 친히 용담에 왔네." 하고 온화하게 맞아주었습니다.

밤이 깊도록 오래 담화를 하다가 이윽고 덕산스님이 숙소로 돌아오려는데 주위가 어두워 용담선사가 촛불을 한 자루 켜서 덕산스님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덕산스님이 불을 받아들고 방에서 나와 신을 신으려는데 용담선사는 틈을 주지 않고 불을 확 불어 꺼버렸습니다. 그 순간 덕산스님의 마음이 확 열려서 모든 암흑같은 어리석음이 밝아졌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튿날 덕산스님은 자기가 짊어지고 온『금강경』소초를 전부 태워버렸습니다.

경전을 비유할 때 흔히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참마음을 깨치기 위한 또는 불국토에 이르기 위한 안내서가 바로 부처님말씀인 경전입니다. 만약에 달을 보라고 손가락을 가리켰는데 달은 안보고 손가락만 본다면 되겠습니까. 그리고 안내서라는 것은 목적지에 바로 도착하기 위해 여러 정보를 제공하는 것인데 길을 떠나지 않고 그 안내서의 내용만 파고 있다고 도착되겠습니까.

우리도 부처님이 체득하신 그 진리를 감동하고 우러러 박수만 칠일이 아니라 부처님이 가신 길을 따라서 우리도 함께 그 길을 가야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방금 이 이야기로서 우리는 참된 불자의 자세를 배울 수 있습니다.

기도 법회에서 거룩하게 불제자로 정성을 다하지만 이 법당 문턱만 넘으면

스님 법문도 끝나지도 않았는데 공양간에서 밥 먹는다고 시끄럽게 떠들고 난리고 뭐 떡 한 조각 더 챙겨갈려고 밀치고, 또 서로 잘났다고 흉보고 질투하고 이래서 무슨 공덕이 원만하게 갖추어지겠습니까.

부처님말씀대로 실천하고 수행하는 것이 바른 불자의 자세일 것입니다.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과거의 마음은 이미 지나갔고, 현재의 마음은 순간 순간 흐르고 있으며, 미래의 마음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그러면 여러분은 어느 마음으로 점심을 드시겠습니까?

지나간 과거에 대한 생각과, 아직도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염려로 하루도 걱정이 떠날 날이 없다. 이렇게 걱정 속에 살다보면 마음 편안할 날이 없다.

부처님께서는 현재 이 순간 순간을 충실하고 항상 감사하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과거는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고, 미래는 밝아 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과거에 대해서는 참회를 말씀하셨고, 미래에 대해서는 원력을 가르쳤다. 그러면서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고 하셨다. 무엇보다 현재가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현재의 내가 하는 일이 바로 미래에 받을 과보를 결정짓는 순간이다. 그런데 충실하고 전력을 다해야 할 현재에 걱정만 하고 있다면 무슨 발전이 있을 수 있겠는가?

티베트의 속담과 같이 이루어질 일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말고, 이루어지지 않을 일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말자. 오로지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서, 충실히 살다보면 모든 원력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이렇게 법회에 참석한 인연 공덕으로 삼계의 모든 힘들고 괴롭고 어리석은 모든 이들에게 회향되어서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함께하시어 마음속에 원하는 모든 일들이 원만 성취되시고 항상 복되날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출처 : 백운사와 물소리
글쓴이 : 至公無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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